필리핀 국민가수이자 민중가수인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 1953~ )를 필리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 오래된 가수여서 이름은 잘 기억 못 해도 아낙(Anak) 과 바얀코(Bayan Ko) 이 두 노래 제목을 말하면 대부분 다 기억합니다. 오늘은 프레디 아길라의 삶과 그의 음악에 대해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프레디 아길라의 대표곡 아낙(Anak)
프레디 아길라는 1978년에 발표한 곡 “아낙(Anak, 내 자식)”으로 세계 24개국에서 약 8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던, 필리핀 아니, 아시아 최고의 가수였습니다. 또한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이 활동하던 1983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까지 찍었고, 2006년에는 필리핀 역대 최다 판매 앨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세계적인 가수들이 번안을 해서 노래를 불렀고 우리나라에서는 1979년에 이용복이라는 가수가 번안을 해서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우리나라 영화 '강남 1970'의 OST 에도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곡인 아낙(Anak) 이란 단어의 의미는 한국말로 내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를 통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본인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직접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그는 대학교 재학 시절 음악에 미쳐서 대학교를 중퇴하고 여기저기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중, 어릴 적 음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와 대학교도 그만둔 일을 후회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1953년생이었던 그는 25살이던 1978년 까지는 무명 가수의 생활을 이어가다가 그해 열린 메트로 마닐라 가요제에서 아낙을 부르게 됩니다. 그 가요제에서 대상은 다른 사람이 받았지만 모든 관객들은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아낙만 연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낙이란 노래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는데, 완전 대박이 나 버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필리핀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됩니다. 그 뒤에 미국 시장에서 좋은 조건으로 전속 계약 요청이 들어오는데, 그 제안을 거절하고 필리핀으로 돌아옵니다.
제안한 조건이 미국에 살아야 하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타를 뺀 춤과 함께 노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팝 아티스트가 되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었던 그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프레디 아길라의 바얀코(Bayan Ko)
필리핀 사람들이 느끼는 프레디 아길라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의식 있는 가수였습니다. 그는 평생 영어 노래는 부르지 않았고, 모국어인 타갈로그어로 모든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독재자 마르코스에 저항하며 필리핀의 민주화를 위해 노래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의 많은 노래들이 방송 금지가 되었었고, 마르코스가 물러난 뒤에 금지가 풀렸습니다.
특히 그의 바얀코(Bayan Ko, 나의 조국)란 곡은 필리핀 민주화 혁명(피플 파워 혁명 혹은 EDSA Revolution) 당시 시위 중인 거리에서 필리핀 민중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입니다. 이렇듯 그의 곡은 주로 필리핀의 빈곤층, 술집 여자, 해외 이주 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과 같은 사회 소외계층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며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EDSA Revolution. 1986)
1986년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몰아낸 민주화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4.19 혁명처럼 독재 정권을 몰아낸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EDSA(Epifanio De los Santos Avenue) 는 마닐라에 있는 도로 이름이고 그 도로에서 혁명이 진행 되어서 그렇게도 부르고 있다.
필리핀의 국민가수 프레디 아길라
프레디 아길라는 필리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가수로 그의 곡 대부분이 서정적입니다. 대부분의 필리핀 노래들이 전반적으로 밝고 활기찬 곡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의 노래는 필리핀 서민들 삶의 또 다른 면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낙이라는 단 한 곡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던 프레디 아길라. 그는 부와 명예보다는 함께 나누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노랫말처럼 항상 약자의 편에서 그 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필리핀의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는 곳에 항상 프레디 아길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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