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필리핀 식민 지배 시대부터 현재, 2020년까지 필리핀의 근 현대사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필리핀과 미국의 전쟁, 미국 식민 지배 시대, 일본의 필리핀 점령, 필리핀의 독립,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 그리고 현재 집권하고 있는 두테르테 대통령까지.
지난 포스팅에서는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 지배 시대부터 1898년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 결과로 필리핀에서 스페인이 물러나고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기로 한 파리조약의 결과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리핀 역사 마지막 편으로 미국 식민지배 시대부터 2020년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필리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필리핀과 미국의 전쟁(1899년~1902년)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필리핀에서 물러남에 따라 대다수의 필리핀 국민은 이제 필리핀의 독립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파리 조약의 결과로 미국이 2,000만 달러를 스페인에 주고 필리핀의 영유권을 양도받게 됩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맥킨리는 "필리핀 제도는 미국의 자유로운 깃발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 하지만,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비롯한 필리핀 민중들은 분노했습니다.
☞ 에밀리오 아기날도 (Emilio Aguinaldo. 1869~1964)
필리핀 독립운동 지도자. 1896년 8월 필리핀 혁명이 발발하자, 혁명군을 이끌고 투쟁을 벌인 끝에 1898년 6월 12일에 루손섬 카비테에서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였다.(현재 필리핀의 독립기념일 6월 12일) 1899년 마닐라의 말롤로스에 혁명 정부(필리핀 제1공화국)를 수립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필리핀을 영유하게 되자, 이번에는 미국에 대항하는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1901년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카비테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35년 공화국 초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마누엘 퀘손에게 패하고 말았다.
결국, 필리핀과 미국의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필리핀군은 결국 패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 12만 명의 미국의 군대가 투입되었고, 약 4,500명의 미군 전사자와 약 60만 명 이상의 필리핀인(군인과 민간인)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에 1901년 미국의 필리핀 초대 총독 윌리엄 태프트가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1905년에 미국의 필리핀 초대 총독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내각 총리 가쓰라 다로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의 지배권을 일본은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성사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은 미국에 대한 견제로 필리핀의 독립을 은근히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일전쟁으로 인해 영일동맹이 이루어지면서 미국 일본 사이의 밀약도 성사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필리핀의 독립을 물밑에서 지원한 일본이었지만 미국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한때 우호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관계도 1941년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폭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즉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2. 필리핀 자치령(필리핀 연방의 성립)
필리핀과 미국의 전쟁에서 필리핀이 패하면서 필리핀 전역이 미국의 식민지배 체제로 돌입합니다. 이후 필리핀 자치령이 수립되고 마누엘 퀘손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필리핀에 영어가 보급되고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필리핀 경제는 미국과의 자유무역으로 미국에 심하게 종속되었고, 필리핀 민중들의 빈부격차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큰 빈부격차와 크고 작은 불평등이 필리핀을 독립으로 이끌게 됩니다. 과격해진 필리핀 민중들의 사회 개혁 요구가 이어지자, 1934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필리핀 독립법"을 미국 의회에서 가결 시켜 10년 후에 필리핀의 독립을 승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잘해서 10년만 기다리면 드디어 필리핀도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전대미문의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 하면서 필리핀은 또 한 번 좌절하게 됩니다. 1941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3. 태평양 전쟁과 일본의 필리핀 점령(1942~1944)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하게 됩니다. 1942년 1월에 일본군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점령했고, 5월에는 미국-필리핀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1943년 5월에는 미국 극동 육군 전군이 일본에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일본의 군정은 필리핀에 가혹했습니다. 이로 인해 필리핀 내에 많은 무장 독립 게릴라들이 활동하였으며, 민심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이 당시 공산당 후크발라합 세력과 자유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독립 운동가들이 함께 항일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943년 10월에 일본은 필리핀인들의 민심을 회복시키기 위해 호세 라우렐을 대통령으로 하는 필리핀 제2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 제2공화국은 일본이 만주사변 직후에 만주 지역에 세운 만주국과 비슷한 괴뢰국(꼭두각시 정권) 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는 일본에 불리하게 돌아갔고, 드디어 1944년 10월 필리핀 비사야 지역 레이테만 전투에서 미군이 대승을 거두면서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 복귀하게 됩니다. 1942년 일본군에 의해 필리핀 마닐라가 점령당하기 전 맥아더 장군이 눈물을 흘리면서 호주로 퇴각해서, 한 말이 필리핀으로 반드시 돌아오겠다 "I shall return" 이었는데 그 약속을 2년 만에 지킨 것입니다. 결국 미국과 연합군이 1945년 9월에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필리핀의 희생자는 110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1946년에 드디어 필리핀은 약 380년 이라는 기나긴 외국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완전히 독립을 합니다. 결국, 필리핀은 미국의 지원과 영향력을 받으면서 실질적인 독립을 하게 됩니다.
4. 필리핀 제3공화국(1946~1965)
필리핀이 독립하게 된 1946년부터 1965년까지 필리핀 제3공화국 시기였습니다. 1) 마누엘 로하스 정부(1946~1948), 2) 엘피디오 키리노 정부(1948~1953), 3) 막사이사이 정부(1953~1957), 4) 카를로스 가르시아 정부(1957~1961) 그리고 5)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정부(1961~1965)가 이어집니다.
이 시기에 필리핀은 미국과 여러 나라로 부터 전쟁 재활 보조금 등을 받으면서 피폐해진 전후 경제를 재건해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로 부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에 심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번영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 하게 됩니다.
5. 마르코스 정권(1965~1986)
한때 아시아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나름 잘살고 있었던 필리핀에 또 한 명의 희대의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등장할 무렵, 이미 미국에 높은 경제 의존도를 가지고 있던 필리핀 경제의 한계가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그럭 저럭 선방 하던 필리핀에게 극빈국 행 급행열차 티켓을 끊어준 장본인입니다.
그 인물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입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세트로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부인 이멜다입니다. 마르코스는 1965년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군부를 철저히 장악하고 독단적인 정치를 했습니다. 부정선거는 기본이고 민다나오 지역 이슬람 모로족과의 내전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정치인을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부분적으로 토지 개혁과 외국 자본의 적극적 도입을 골자로 한 경제 정책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마르코스는 그의 부인 이멜다와 부정부패와 나랏돈을 개인계좌에 착복하는 등 20여 년간 독재와 실정을 저지릅니다.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는 필리핀 헌법 조항을 개정하여 독재를 시작했고, 그의 부인 이멜다까지 정부 각료로 임명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르코스의 독재로 고통 받던 1983년 필리핀에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필리핀 민주화 지도자이자 마르코스의 정치적 라이벌인 아키노 2세가 암살된 겁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해서 1986년 코라손 아키노(암살당한 아키노2세의 부인)와의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밝혀지면서 필리핀 민중에 의해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또는 EDSA Revolution)" 이라는 민주화 혁명이 발생합니다.
☞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EDSA Revolution. 1986)
1986년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몰아낸 민주화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4.19 혁명처럼 독재 정권을 몰아낸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EDSA(Epifanio De los Santos Avenue) 는 마닐라에 있는 도로 이름이고 그 도로에서 혁명이 진행 되어서 그렇게도 부르고 있다.
필리핀 민중들이 피플 파워 혁명으로 코라손 아키노를 진정한 승자라고 주장을 했고, 마르코스는 부인 이멜다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결국 마르코스는 1989년에 하와이에서 사망합니다. 이로써 필리핀에는 다시 민주화 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마르코스가 쫓겨난 뒤 필리핀의 대통령은 1983년에 피살된 아키노 2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됩니다.
마르코스는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개인적인 사리사욕으로 약탈한 약탈 정치인으로 국제 투명성 기구에서 지정한 부패 독재가 순위에서 2위라고 합니다. 1위는 스하트로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입니다. 참고로 2위 마르코스가 부정 축재한 금액은 약 100억달러(한국 돈 약 12조원) 이고 1위 스하트로의 부정축재 금액은 350억 달러 입니다.
6. 필리핀 제5공화국(1986~2020 현재)
필리핀 제5공화국 코라손 아키노 정부 초기에 나름의 정치개혁이 진행되었으나 잦은 쿠데타와 민중 소요가 발생하였고 경제 위기도 많았습니다. 비교적 아키노 정부는 청렴한 행정부였지만 좀처럼 필리핀의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코라손 아키노 행정부(1986~1992) 이후로는 1) 피델 라모스(1992~1998), 2) 조지프 에스트라다(1998~2001), 3) 글로리아 마카파가 아로요(2001~2010), 4) 베그니노 아키노 3세(2010~2016) 등의 대통령을 거치며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서서히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부정부패는 개선 되지가 않았고, 치안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이슬람 세력과의 내전 문제나 극소수 유력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족벌 정치는 여전히 심각했습니다. 특히 제5공화국 정권들 역시 토지개혁에 있어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였습니다. 필리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소수 유력 가문들이 광활한 토지, 플랜테이션 대농장 그리고 족벌 재벌 기업을 소유한 필리핀 최상위층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대대로 부와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필리핀의 정치·경제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토지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해서 발생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호주 국립대 유종성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부패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부패를 초래한다." 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와 대만, 필리핀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비교 분석해서 부패와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1) 1945년 일본의 패망에 따라 식민지 시대를 청산한 동아시아 국가, 2) 가난 했고, 불평등했으며 부패가 심각했다. 1945년 당시 필리핀의 1인당 소득과 교육 수준은 대만이나 우리나라보다 높았지만 2020년 현재는 역전돼 필리핀의 불평등과 부패가 가장 심하다.
필리핀과 한국·대만의 위치를 뒤바꾸고 격차를 벌린 건 바로 토지개혁의 성패였다. 필리핀은 토지개혁의 실패로 대지주 가문이 산업·금융 자본을 모두 소유하고 정치·경제까지 포섭해 저성장과 빈곤의 늪에 빠져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은 성공적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 권력을 해체하고 소득 분배에 이바지했다.
7. 두테르테 정권(2016~2020 현재)
필리핀 국민은 2016년 대선에서 부패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으로 유명해진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현재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법적이고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인권을 무시한다고 공격을 받고 있고, 또 희한하게도 유력한 가문에게는 이런 개혁이 자연스레 비켜 간다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두테르테 본인이 나름 필리핀 유력 집안 출신이라 그런 걸까요??
참고로 두테르테의 아버지는 과거 민다나오 다바오 주지사를 역임하고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행정 비서관으로 중앙 정계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사촌인 로널드 두테르테는 1983~1986 세부주 세부시티의 시장을 지냈습니다.
☞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1945~ )
필리핀의 정치인이다. 필리핀 남 레이테주에서 태어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다바오주 다바오시에서 성장한 그는 다바오의 시장으로 재직하며 정치 기반을 쌓았다. 2016년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하였으며, 필리핀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초법적 살인을 통해 범죄를 없앨 것이라고 공약 했다. 또한 그는 거침없는 막말 행각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린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서 필리핀의 선사시대 부터 2020년 현재 상황까지 필리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도 좀 더 알찬 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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