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은 누구일까?
마젤란이란 누굴까요? 검색해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오더군요.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년 출생, 1521년 사망)은 포르투갈 태생의 스페인 항해가, 탐험가이다. 15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새로운 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지중해와 중동 지방을 거쳐 가던 육상 무역로 외에 새로운 동방 항로에 대한 탐구가 한창이던 시절, 인류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인도양을 횡단하여 지구를 한 바퀴 항해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낸 사람으로 역사 기록에 남은 인물이다.
마젤란은 여러 항해 도중에 남미에 있는 마젤란 해협과 태평양 그리고 마리아나제도(괌, 사이판) 등을 유럽인 최초로 발견하여 명명하였고, 필리핀 땅에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2개의 은하(대마젤란은하와 소마젤란은하)를 발견하여서 후에 사람들이 그 2개를 합쳐 명칭을 마젤란은하(Magellan's Galaxy)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마젤란은 포르투갈 하급 귀족 출신으로,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의 부하로서 동남아시아에서 일하였으며, 많은 항해에도 참여하여서 동남아시아 지역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선장이 된 마젤란은 말레이시아 말라카(Malacca)와 인도네시아 말루쿠제도(Maluku Islands) 사이의 향신료 무역을 위해 항해를 했으며, 초반에는 왕의 신임을 받는 포르투갈의 군인이자 선장이었으나, 모로코에서 현지 무어인과의 불법 무역 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이에 포르투갈 왕의 신임을 잃고 파면되었습니다. 그 후에 포르투갈과의 인연을 끊고 스페인으로 전향하였다고 합니다. 말이 전향이지 쫓겨나서 스페인 쪽으로 붙었습니다.
향신료 제도(Spice Islands)를 찾아서
그러면 여기서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생기네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왜 동방 항로(동남아시아)를 그토록 가려고 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바로 향신료(Spice) 때문이었습니다. 향신료는 향료라고도 하며, 음식에 향을 더해주거나, 혹은 색깔을 내기도 하여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미료를 말합니다. 생선의 비린내, 고기의 누린내 혹은 음식의 장기 보관을 도와주었던 게 향신료였기 때문에, 마젤란이 활동하던 그 당시에 유럽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향신료 무역으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익이 많이 났던 향신료는 계피(Cinnamon), 정향(Clove), 육두구(Nutmeg)였는데 이것들이 재배되는 지역이 지금의 인도네시아 쪽 말루쿠 제도(Maluku Islands, 그 당시 유럽 사람들은 향신료 제도. 즉 Spice Islands 라고 불렀습니다.)였습니다. 이에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관심은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에 가 향신료를 싸게 사 와서 유럽에서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그 당시 향신료 가격이 금값하고 비슷했다고 하니 집착을 할 만하죠…
토드데시야스 조약 (1494년)
그렇다면 스페인으로 전향한 마젤란은 왜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서쪽으로의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1480년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 막대한 해상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문제는 1492년 스페인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지금의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섬들)를 발견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분쟁이 터지면서 시작됩니다. 두 나라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교황이 중재하게 되면서 1494년에 스페인의 토르데시야스란 곳에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 조약의 이름은 토르데시야스 조약(The Treaty of Tordesillas)입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맺은 사상 최초의 기하학적 영토 조약으로써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세력 분야(관할구역) 확정을 위해 그 당시 세계지도를 놓고 남과 북으로 가상의 선을 그어 그 선 기준 오른쪽은 포르투갈의 관할 지역, 왼쪽은 스페인의 관할 지역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포르투갈의 힘이 좀 더 세어서인지 가상의 선 기준으로 오른쪽은 이미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지역이었음에 반해, 왼쪽은 거의 알려진 곳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의 새로운 항로 개척의 의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결국 마젤란이 대항해를 시작한 이유도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영향 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조약의 영향으로 남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 들은 스페인 식민지였었고 현재까지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단 한 국가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지금까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토르데시야스 조약 때문에 스페인은 어쩔 수 없이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를 가기 위해서 서쪽 항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동쪽으로 돌아가는 인도양 항로는 이미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마젤란이 대항해를 시작한 이유에 관해 알아 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마젤란의 대항해가 시작되는 이야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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