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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이야기

필리핀이 그리워하는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

by 민강사 2024. 9. 6.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리핀이 그리워하는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필리핀의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정직과 청렴함을 기본으로 서민 친화적인 정책과 필리핀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현재 정말 못 사는 나라고, 겉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한 민주 공화국이지만 실상을 보면 거의 중세 봉건사회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이런 필리핀에도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필리핀이 그리워하는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입니다. 이름이 좀 발음하기 쉽지 가 않습니다.

저는 경험을 못 해 봤지만 1970년대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살짝 실렸던 인물(위인으로)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조금 선배들은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지 막사이사이(Magsaysay) 대통령을 어렴 풋이 기억하는 분들이 있는 걸 봤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리핀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필리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았던 필리핀의 영웅 라몬 막사이사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라몬 막사이사이 (Ramon Magsaysay. 1907~1957)

필리핀의 정치가이자, 필리핀 제7대 대통령. 임기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 그의 업적을 기려 사후 막사이사이상(Magsaysay Award)이 제정됨. 막사이사이 정부는 현대 필리핀 정부 중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부패가 없던 정부로 평가되고 있음.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좌: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우:막사이사이와 마르코스

 

 

라몬 막사이사이는 1907년 필리핀 루손섬 잠발레스(Zambales)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고학으로 호세 리잘 대학교(Jose Rizal University)를 졸업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플로리다(Frorida)"라는 버스회사에서 처음에는 정비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부지런함과 업무 능력이 인정을 받아 그 회사 총 지배인까지 하게 됩니다.

 

라몬 막사이사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막사이사이는 필리핀 육군 대위로 자원해서 참전하게 됩니다. 그는 게릴라 부대를 조직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와 공적을 남기게 되며, 그의 리더십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한 뒤, 막사이사이는 1946년 정치에 입문해 필리핀 하원 의원, 그리고 1950년에는 필리핀 국방장관을 역임하게 됩니다. 그는 국방장관 재임 당시, 반미 반정부 무장 투쟁을 했던 공산주의 게릴라 후크 발라하프(혹은 후크단)를 당근과 채찍의 방법으로 진압을 하게 되면서 태평양의 아이젠 하워 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 당선 및 평가

1953년 필리핀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던 엘피디오 키리노(Elpidio Quirino)를 이기고 필리핀 제7대 대통령(필리핀이 완전히 독립한 이후로는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당선 후, 필리핀의 복지 정책에 힘을 쏟았고 토지 개혁을 통한 농업 개혁 프로그램으로 일정부분 성과를 냈으며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안보 정책에 협력했습니다. 물론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기존 유력 정치 가문 출신들로 구성된 국회의원들은 막사이사이의 정책(특히 토지개혁 정책)에 비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 당시 공산세력을 몰아내고 필리핀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해 필리핀 국민들의 절대 지지를 받았고, 정직하고 청렴한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임기 중 그의 측근 및 가족들에게 그 어떤 특혜도 주지 않았고 서민과 빈곤층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아직도 그의 재임 당시 필리핀 전역에 만들어졌던 공동 우물을 "막사이사이 우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막사이사이 정부(1953~1957)는 현대 필리핀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부패가 없는 정부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고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을 필리핀의 "황금시대"로 부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과 필리핀의 산업이 번창했었고 스포츠, 문화, 외교 등에서 필리핀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필리핀은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는 아시아 국가들 순위에서 일본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라몬 막사이사이의 사망

 

하지만 1957년 3월(1957년 12월 임기 종료) 재선을 위해 세부(Cebu)지역의 순방을 마치고 마닐라로 돌아오던 중 안타깝게 비행기 추락 사고로 함께 했던 수행원들과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그를 이은 후임 대통령들(가르시아, 마카파갈)이 막사이사이 사후에 벌어진 정치 경제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게 되고, 이후 마르코스 독재 정권(1965)이 수립되면서 안타깝게도 필리핀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넘과 동시에, 발전 가능성을 모두 상실한 채 동남아시아의 후진국으로 몰락하는 급행열차를 타게 됩니다.  

 

막사이사이  상(Magsaysay Award)

 

이후 1958년 그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로,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때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렸던 막사이사이 상(Magsaysay Award)이 마련 되게 됩니다. 나름 아시아권에서는 권위가 있는 상으로, 한국인 막사이사이 상 수상자로는 독립운동가 장준하, 교육인 김활란, 법륜스님,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있습니다.

라몬 막사이사이는 충분히 재선에 성공(사망 당시 나이 50세) 해 필리핀의 중흥을 지속시킬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안타깝게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하게 됩니다. 더 불행했던 것은 그의 사망 이후로 필리핀 정치 경제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는 겁니다. 이렇듯 필리핀 국민들은 막사이사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그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다시 필리핀에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필리핀이 그리워하는 지도자 라몬 막사이사이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