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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이야기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

by 민강사 2024. 9. 11.

앞선 포스팅에서 필리핀 경제가 폭망한 5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었습니다. 그 포스팅에서는 따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멜다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유는 필리핀 경제가 폭망한 이유가 마르코스 대통령 한 명에게만 있었던 거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르코스 대통령이 필리핀 민주주의를 나락으로 떨어트렸고, 나라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는데 어느 정도 많이 일조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에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 글 먼저보기 : [필리핀 사회 문화 이야기] - 필리핀 경제가 폭망한 5가지 이유

 

필리핀 경제가 폭망한 5가지 이유

오늘은 필리핀 경제가 폭망한 5가지 이유에 관해 포스팅을 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국가일수록 사람들 간의 빈부격차가 매우 큽니다. 필리핀은 전형적인 사람들 간의 빈부격차가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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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마르코스는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이후 필리핀 정계에 진출하였고, 마누엘 로하스(Manual Roxas) 대통령 보좌관을 하게 됩니다. 보좌관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을 하여 하원 의원, 상원 의원 그리고 필리핀 자유당 총재와 상원의장까지 역임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게 됩니다.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Ferdinand Marcos. 1917~1989)
필리핀의 정치가, 대통령, 독재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 군인. 필리핀 하원, 상원 의원을 거쳐 자유당 총재와 상원 의장을 역임했다. 1965년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되어 21년간 집권한다. 1986년 필리핀 민주화 혁명으로(피플파워 혁명 또는 EDSA Revolution) 쫓겨나듯 미국 하와이로 망명을 가 1989년 하와이에서 사망한다.

필리핀-마르코스-대통령
필리핀-마르코스-대통령

 

마르코스 독재의 시작


그러던 중 마르코스는 슬슬 대권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게 됩니다. 1965년 자유당 대선 후보 지명에서 마카파갈(필리핀 제9대 대통령)에게 밀려 탈락한 후 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겨 그 해 필리핀 대권에 도전하게 됩니다. 마카파갈 과의 대선에서 마르코스는 치열한 공방 끝에 마카파갈의 재선을 저지하고 필리핀 제10대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임기 초반에 의욕적으로 농업, 경공업 부문 집중 육성 정책 등의 국가 재건 사업을 시행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필리핀의 경제와 사회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성공하여 1969년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행했던 정책들의 효과가 점점 미미해 지고 필리핀 경제가 조금씩 나빠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내 공산당 세력이 부활하고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이슬람 세력과의 마찰이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마르코스는 197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본격적인 독재 정치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계엄령 하에서 마르코스는 야당의 활동 중지, 국회 해산, 반대파 감옥에 투옥, 그리고 언론과 미디어를 통제하게 됩니다. 이후 헌법 조항을 개정하여 본격적으로 독재정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마르코스는  권력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을 자기 마음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 지원금 상당수를 문화 센터 건설에 사용하고 스위스 개인 계좌로 착복을 하는가 하면, 배우자 이멜다는 엄청난 사치와 허영에 빠져 필리핀의 경제 사정을 더 악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필리핀 경제는 폭망 하기 시작했고 필리핀의 외채는 산더미처럼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정부패와 몰락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마르코스 일가의 권력 남용은 도를 넘기 시작합니다.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마르코스 재임 중에 하원 의원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장 그리고 주택 환경부 장관까지 겸임했습니다. 또한 그의 장남인 봉봉 마르코스(Bong Bong Marcos)는 대통령 보좌관을 맡는 등, 그의 측근들과 일가족이 필리핀 권력을 독점해 부정부패를 일삼게 됩니다. 그렇게 필리핀 정부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고, 국민들의 빈부 격차는 심해졌으며 경제는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필리핀-마르코스-패밀리-1969년
필리핀-마르코스-패밀리-1969년

 

이렇게 마르코스의 독재와 부정부패로 고통받던 1983년 필리핀에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르코스의 정치적 정적이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가 필리핀 입국 도중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을 당한 것입니다. 아키노는 1972년 마르코스의 계엄령 선포 이후 감옥에 투옥된 뒤 풀려나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필리핀으로 귀국하는 중이었습니다. 이후 마닐라 국제공항의 이름이 아키노의 이름을 따서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마르코스는 아키노가 살해당한 것이 자신이 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1986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도 부정선거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필리핀 민중들과 필리핀 가톨릭 교단은 민주화 혁명(피플 파워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마르코스가 군부에게 시위 진압을 요청하지만 군부세력도 마르코스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수세에 몰린 마르코스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부인 이멜다와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후 1986년 대선에서 마스코스와 격돌을 했던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의 미망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9년 마르코스는 망명지였던 하와이에서 지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마르코스가 독재를 하면서 부정 축재한 금액이 약 100억 달러(약 12조 원) 정도라고 하는데, 필리핀 정부에서 환수한 금액은 약 4조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EDSA Revolution. 1986)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낸 민주화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4.19 혁명처럼 독재 정권을 몰아낸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EDSA(Epifanio De los Santos Avenue)는 마닐라에 있는 도로 이름이고 그 도로에서 혁명이 진행되어서 그렇게도 부르고 있다.

필리핀-피플파워혁명-코라손-아키노-대통령-취임식
필리핀-피플파워혁명-코라손-아키노-대통령-취임식

 

이렇듯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회자되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는 필리핀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바닥으로 내팽개쳤고 그와 그의 일가친척들이 저지른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는 필리핀 경제를 폭망하게 하는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마르코스 정부 출범 초기 반짝했던 경제 발전과 안정된 사회를 잠시 유지했던 것을 못 잊는 필리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말이 생각 나네요, "독재자의 한번 임기에 경제가 망하고 두 번 임기에 나라가 망한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는 상원 의원 시절 미스 마닐라 출신 이멜다(Imelda Marcos. 1929~ )에게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7,107(필리핀의 섬 숫자와 동일)개의 진주로 장식된 곳에서 이멜다에게 청혼을 했고 만난 지 13일 만에 결혼하게 됩니다.

이멜다는 영부인 시절 값비싼 명품 구두(3,000 켤레 이상 보유) 수집 과 고가의 미술품 그리고 유럽 왕실의 보석을 나랏돈으로 구매하는 게 취미였다고 합니다. 매일 개최되는 호화로운 파티와 사치스러운 생활로 "사치의 여왕"으로 불렸습니다.

 

필리핀-이멜다-젊은시절-최근
필리핀-이멜다-젊은시절-최근



마르코스와 하와이로 망명한 뒤 필리핀의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에서의 호화로운 생활이 폭로되면서 이멜다의 사치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하와이로 망명 후 이멜다가 필리핀 정부로부터 환수당한 보석만 200억 원 정도 어치라고 합니다. 문제는 다 환수를 못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와이에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사망 후 그의 시신과 함께 이멜다는 필리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에 필리핀 하원 의원에 당선이 되고 이멜다의 장녀 아이미 마르코스(Imee Marcos)도 마르코스 대통령의 고향인 북 일로코스(Ilocos Norte)  주지사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멜다와 아이미는 2019년 5월에 나란히 필리핀 상원 의원에 당선됩니다. 

더 기가막힌 것은 이멜다의 장남 봉봉 마스코스(Bong Bong Marcos)는 필리핀 상원 의원을 거쳐 2022년 제17대 필리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24년 현재 대통령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참 씁쓸한 게, 이러니 필리핀이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국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꽤 괜찮았던 필리핀이란 나라를 50년 정도 후퇴를 시킨 장본인들인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그의 일가족인 부인 이멜다와 자녀들을 왜 다시 필리핀 도지사,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건지, 도대체 이런 부분을 보면 필리핀 국민들이 좀처럼 이해가 돼질 않습니다. 이상으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